여름방학을 송두리째 실습으로 보내야했던 2학년 학창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하고 지난날을 더듬어 보니 벌써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치위생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를 몸소 경험했던 경북대학교 치과

병원 실습기간 중 보존과를 실습할 때는 눈물까지 보이며 힘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서울로 상경해서 햇병아리 위생사의 딱지를 벗기며 여러 해를 뒤
돌아 볼 새도 없이 앞을 향해 달려온 시간들이었지 만 간혹 대학시절이 그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고향집이 대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아침6시 출근용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1시간
,(지금도 운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버스를 타고 1시간,  하루 총4시간을 차에서
보내며 통학을 하던 대학 시절 2년 내내 나는 차에 오르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대구 시내에 사는 친구들은 기차 타고 통학하면
낭만 있지 않느냐며 은근히 남의 속도 모르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다른 지방에서 다니는 친구들과는 달리 통학을 선택했고 학교 근처
에 자취하는 친구들이 시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점들이 내심 부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엄하신 부모님의 반대에 통학을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오며가며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많은 볼거리와 여러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때는 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기차 중에서 제일 안전하게? 달린다고 볼 수 있는 비둘기호는 새벽아침에 대구로 출근
하는 직장인과 통학하는 학생들과 또 한 부류의 아주머니 부대들이 있다.
(*참고 비둘기호는 모든 역을 정차하는 기차이다)

내 고향 청도는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이라 자랑할 만 하며 또한 산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산나물이다.

시골은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하루 종일 산에서 손톱 밑이 시커멓게 물들도록
산나물을 캐어서 대구 ‘번개시장'에 팔아서 자식들 대학 보내는 가정들이 많았는데
그 부류의 아주머니들이 기차에 오르면 순식간에 그 차 칸은 시장바닥이 된다.

각종 산나물에 콩이니 팥이니 저런 풀잎도 다 먹나싶을 정도의 내가 알지 못하는
산나물  보자기짐들을 머리에 이고 지는 풍경들이 펼쳐지며  간혹 기차 안에서
즉석으로 사가는 손님들도 있을라치면 그야말로 이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는
것이다.

그때는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 모습들이 짜증스러워 보였고 더군다나 나의 단잠을
깨우는 아주머니들로 기억되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니 그 어머니들이 한
푼의 돈을 만들고자하시는 새벽같이 부지런함과 수세미같이 검게 되신 손들이 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시구나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를 눈시울이 불거짐은 왜일까?

시골에서 자라서 볼 수 있었던 이런 힘겹지만 따뜻했던 추억들을 간직한 채 나의
임상생활은 벌써 13년째에 접어든다.

진료를 하다보면 밭일하다온 시골 할머니 같은 분들이 계시면 어찌할 바를 몰라 설명
도 남달리 조목조목 천천히 크게 말씀드리고 정말 틀니가격이라도 저렴하게 해드리
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이제는 나의 강권으로? 원잠님께 말씀드려서 그런 분들은 간혹 특별히 저렴하게
해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한 번은 보건소에서 의뢰한 틀니 환자가 오셨는데 형편이
좋지 않으신 할머니였다.
기존 틀니를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고 수리해서 쓰시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무료로 해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치료비를 안 받는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시며
원장님과 스텝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우리들은 오히려 멋쩍어하며 인사드리고 보내드렸는데 잠시 후 나가셨던 할머니가
비닐봉지 한 가득 요구르트를 사들고 다시 오신 게 아닌가.    

치료비를 못 내신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고맙다며 부끄러운 듯이 내민 요구르트!
그 요구르트는 내가 맛본 것 중 제일 눈물겹고 정다운 요구르트였다. 

지금은 2003년 1월 또 새로운 해를 맞아 병원은 올해를 개업원년의 해로 정하고 다시
도약하는 시스템을 만드느라 분주한 가운데 어김없이 각 대학의 후배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나왔다.

내가 대학시절 학생의 신분에서 느꼈던 많은 두려움과 긴장감, 궁금증 속에서 배움을
갈망하며 열심히 임상실습에 임했던 것처럼 지금의 학생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리
라 생각되지만 그것에 앞서 먼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가슴 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선배로 남기를 희망한다